지브리 영화 아기 물고기 포뇨 줄거리 리뷰
줄거리, 바다 위 세상이 궁금한 인어공주? 아니 아기 물고기!
포뇨 포뇨 포뇨 아기 물고기! 영화의 OST에도 포뇨의 정체성이 나온다. 포뇨는 아기물고기로 바다에서 아빠와 많은 동생들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기심이 너무나 많은 아이입니다. 그런 포뇨는 어느 날 아빠 몰래 바다 위 세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너무나 궁금하던 세상, 하지만 올라오자마자 포뇨는 유리병에 갇히게 됩니다. 아빠 품에 벗어나자마자 세상의 쓴 맛을 보게 됩니다. 이때 소스케라는 남자아이가 포뇨를 유리병에서 꺼내줍니다. 소스케는 배려심이 많고 의젓하며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는 소년입니다. 소스케는 포뇨를 꺼내다 유리병에 다쳐 손에 피가 나게 됩니다. 이때 (사람인) 소스케의 피를 먹고 사람으로 변할 수 있게 됩니다. 소스케와 또래의 여자 아이가 된 포뇨는 바다 위 세상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생각했던 것처럼 신기한 것투성이고 너무나 즐겁습니다. 포뇨가 바다 위에서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순간 아빠는 포뇨가 사라진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다 위로 얼른 포뇨를 찾으러 갑니다. 그렇게 소스케는 포뇨를 빼앗기게 되고 포뇨는 다시 바닷속 집에 오게 됩니다. 하지만 아빠가 숨겨놓은 엄청난 힘을 얻어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소스케를 찾아갑니다. 다시 온 포뇨를 소스케의 엄마는 친절하게 대해주고, 이때 해일이 일어난 모습에 걱정이 된 엄마는 양로원에 할머니들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소스케의 집은 이 마을의 유일한 등대입니다. 그러기에 모두가 지브리 비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엄마 혼자 길을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도 엄마는 오지 않고 걱정이 된 소스케와 포뇨가 엄마를 찾으러 갑니다. 하지만 포뇨의 엄마인 바다의 여신의 가호 덕에 양로원 식구들은 모두 무사하며 건강까지 되찾습니다. 또 소스케는 바다의 여신에게 인정받으며 포뇨를 잘 보살펴줄 것을 부탁받으며 동네 사람들이 함께 마을을 복구해 나가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물거품이 되도 괜찮아, 우리는 원래 물거품이었어요.
포뇨의 아빠는 포뇨가 걱정됩니다. 자식들 중 제일 천방지축이기도 하고, 이런 어린 딸이 자신의 품을 떠나는 것이 속상한 것도 있지만 소스케가 변심을 하게 되면 포뇨는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 때문에 아빠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딸이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해줄 수 있는건 소스케가 그저 포뇨를 잘 보살펴주길 바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바다의 여신은 그런 아빠마저 잘 다독여주며 또 담담하게 우리는 원래 물거품이었다고 말해줍니다. 즉 우리는 자연에서 오고 자연 그 자체이니 그대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바는 단순히 소스케가 포뇨를 사랑한다는 걸 넘어서 자연인 포뇨를 인간인 소스케가 늘 돌봐주고 아껴줘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은 망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망가뜨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인간을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는 자연의 모습도 함께 보여줍니다. 그러니 인어공주에서 물거품이 되는 소재인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다의 여신도 소스케가 포뇨와 단순히 결혼을 하고 지내는 미래가 아닌 언제나 자연을 아끼는 마음처럼 포뇨를 대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물론 또 영화의 팬으로서 그런 둘이 다 큰 모습으로 잘 지내는 영상이 나온다면 보기 좋을 것 같긴 합니다.
리뷰, 두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
이 영화의 주인공은 크게 보면 두 명으로 소스케와 포뇨입니다. 두 아이는 모두 5살 남짓되는 유치원생들입니다. 하지만 유치원생 답지 않게 의젓하고 예의도 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소스케와 그와 반대로 물 위 세상이 처음이고 사람으로서 처음인 포뇨는 모든 게 서툴고 또래의 아이보다도 훨씬 순수하며 더 아이 같습니다. 이렇게 대조되는 모습에 아이들의 모습인데도 더욱 설레게 됩니다. 또한 너무나도 귀여운 장면들이 잔뜩 나옵니다. 아직도 포뇨가 멀리서부터 소스케를 찾아 달려오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밈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아이들의 사랑은 이렇게 순수하고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기도 해서 가끔 볼 때면 오늘 봤어도 그렇게 서로 좋아해 주고 아껴줍니다. 이런 감정은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도 물론 처음 보자마자 그 사람이 마음에 들고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는 있으나 처음 본 사람을 꽉 안아주고 웃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요? 그러한 점들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른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두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영화 '벼랑 위의 포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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